썸머썸머

예인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앗! 미안... 내 건 줄 아아쎠...

운학아 그것 좀 꺼라 ㄹㅇ 못 들어 주겠다. 맥시멈 찍은 휴대 전화 볼륨 상태에 이불을 싸맸던 여름이 끝내 참아 왔던 쿠사리를 강타했다. 앗 시끄러웠어요? 죄삼다.... 멋쩍음에 뺨가를 지분대던 운학이 무선 이어폰을 연결했다. 김운학의 최근 최대 관심사는 한국 커플 유튜브, 처음에는 누나랑 나 같넹 ㅎㅎ 하면서 킬링 타임용으로 밥 먹을 때나 틀어 놓던 영상들이 죄 알고리즘을 지배해 버린 탓 강의 듣고 작업하거나 여름과 있는 시간 외에 커플 일상 유튜버에게 일상을 잠식당해 버렸다....

유명한 항마력 결핍러 여름은 최근 운학의 아이폰 스피커를 비집고 나오는 일반인 여성의 비음과 자상훈남st 남충의 음성을 도무지 견뎌 주기 힘들었다...... 남자와 연애를 하고는 있다지만 일반적인 한국 남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운학 같은 경우는 베이스 성정에 인혐을 깔고 가는 대문자 I 여성에겐 예외적 케이스에 속했다. 생물학적 남자라 함은 김운학 외 일체 관심도 없으며 한국 2030 헤테로 남성들 특유의 길티함은 여름의 신체에서 알러지 반응을 발생시키기 충분했다는 뜻. 더욱이 그 옆에 찰싹 붙어 어엿한 성인의 나이에 유아 퇴행을 감행하는 전형적인 여자 친구들의 모습이란 어쩐지 구역질이 이는 것이다.... 대체 이게 왜 좋은 거야? 무슨무슨 커플, 어떤어떤 부부. 생전 커플 유튜버라고는 땅끄 부부밖에 몰랐던 여름에게 운학의 새로운 취미란 상당히 버거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귀여운 정도였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하루에 꼴랑 서너 개의 커플 숏폼 영상을 공유하며 이거 우리 같아요 ㅋㅋㅋ 하며 낄낄대던 정도였단 말이다. 일상 소재의 영상에서 틈틈이 연인의 모습을 발견해 주는 운학이 사랑스럽기도 했고, 대견스럽기도 했고. 그러게 진짜 우리 같넹 ㅎㅎ 거들어 준 것이 화근이었을까. 21세기 문명 사회의 알고리즘 기술이란 위대한 것이었다. 메시지 내역을 털어 가다 못해 도청이라도 시도하는지 김운학의 릴스 스크롤을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도 두 동강 난 혀로 아양을 떨어대는 여성과 흐뭇하다는 듯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내리는 남자의 형상이 가득했다.

그만해 시발....



"차라리 보지 말고 직접 찍어라."

"그런데 이 사람들 진짜 재미있어요. 저희 같아요. 구독자도 200만? 넘어요."

"여자가 나랑은 완전 딴판인데 어떻게 우리 같다는 거야?"



아하핫! 우리 여름이 누나 귀여워~ 운학의 뇌내에 장치된 특정 센서가 가동이라도 된 듯 반사적으로 여름의 정수리에 손을 얹는 운학이다. 여름이 전방에 혁명가 고함을 발사하며 바들바들 저려 오는 오금에 뒷골을 감쌌다. 너, 너 뭐 해...? 너 이딴 거 그만 봐라, 진짜 유튜브가 사람 다 버려 놓네....

이렇게 하면 설렌다고 댓글에 써 있던데? ;;

남자 스윗해~ 저런 연애 하고 싶당 ㅠㅠ 하던데?

이미 운학의 뇌는 지리멸렬한 한국 유튜브 채널에 푹 절여져 버렸다. 모든 재앙은 이 순간에서부터 야기된다. 일주일에 한 번, 여름과 운학이 서로의 일정을 고려하여 짜 맞춘 유일한 공강날. 월요일부터 주의 깊게 봐 둔 감성 브런치 카페로 이동하기 전 만날 사람이 있다며 약속 시간에 십 분 정도 지각할 것 같다던 운학은 커다란 쇼핑백을 흔들며 여름에게로 방방 뛰어왔다. 간만 데이트인데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누나아, 하고 땅울림을 시전해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죽을래? 아아, 왜 얼굴 보자마자 화내고 그래요. 저 누나한테 보여 줄 거 있어요. 뭔데.... 여름이 스타벅스 쇼핑백으로 눈을 흘겼다. 헉, 이번 MD 예쁘게 잘 뽑힌 거 인스타에서 봤는데, 설마!



"짜잔~"



누나가 차라리 유튜브 직접 찍어 보라고 해서 당근 했죠~ 엄청 좋은 장비인데 학교 앞에서 엄청 싸게 얻어 왔어요. 저 알뜰하죠? 잘했죠? 칭찬해 주세용. 헬리콥터 날개처럼 핑핑 돌아가는 운학의 꼬리가 여름의 눈에서 가시화되는 듯했다. 귀여워, 분명 귀여운데...... 왜 이렇게 때리고 싶지? 그래....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여름이 쓴 웃음을 삼키자 카메라 전원을 켠 운학이 여름에게로 렌즈를 들이댔다. 이여름 씨, 일주일 만에 하는 데이트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지금 무슨 생각 중이시죠?! ㅎㅎ 니 죽이는 생각



모든 일은 시기상조다. 흡사 무한도전 야유회 셀프캠을 연상케 하는 운학의 브이로그는 레트로라는 허울 좋은 어휘로 포장되어 운학의 인스타 스토리에 업로드되었다. 2020년대 중순 대뜸 불어온 복고 열풍이 아니었다면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수식으로도 커버가 버거울 만한 퀄리티의 영상이었지만 레트로 감성에 운 좋게 편승한 운학의 브이로그는 학과 내에서 소소하게 입소문을 탔다. 솔직히 장비가 생각보다 너무 구려서 기대 안 했는데 ㅎ 저는 역시 럭키가이인가 봄다! ㅎㅎ 팔자 좋게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올린 운학에 여름은 니가 기어코 썩어 문드러지는 속에 김칫국물을 들이붓는구나 생각했다.

앞서 일컬었듯 모든 일은 시기상조, 김운학의 커플 유튜브 뽕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사람은 저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자연 환경과 인문 환경 중 인간의 성장 과정에 있어 가히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관계적 측면이었다. 한때 재학 중인 대학 경영 학과를 목표로 EBS 수능 특강 사회문화 교재를 세 번 연속으로 돌린 여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새끼 인간 관계 청소 한번 들어가야겠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유튜브로 성공하려면 어마어마한 자본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막힌 운발이다. 소소하게 입소문 좀 탄다는 명분으로 도전했다간 등골만 쥐어 터진 채 발 빼게 되는 것이 유튜브라는 레드 오션이었다. 암만 럭키 가이라 해도 그렇지....

그런 김운학에게 동기들은 되도 않는 근자감을 주입했다. 운학아, ㄹㅇ 진지하게 괜찮고 감각 있는 것 같다. 여자 친구분이랑 커플 유튜버? 커플 유튜브? 그거 해 봐라, 왜, 토모토모도 지금 한국에서 대박 쳤잖아. 너 잘생겼으니까 아무리 못해도 중박 정도는 치지 않을까? ㅎㅎ 재현의 말에 깊은 고뇌에 빠진 운학은 이내 기숙사 책장 한 구석에 꿍쳐 두었던 당근 캠코더를 들고 다시 한 번 여름의 자취방으로 등장하셨다.



"누나."

"왜."

"저희 커플 유튜브 해요."



푸학!

평정심을 되찾고자 빈속에 털어 넣던 유자차를 보기 좋게 뿜어 젖힌 여름에 자취방 한켠 작은 무지개가 드리웠다. 우와, 누나 방금 무지개 떴어요....

이게 무슨 무지 개같은 소리니.... 커다란 머그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성큼성큼 운학에게로 걸음한 여름이 운학의 품에 고이 안착한 캠코더를 뺏어 들었다. 너 이거 압수야.



"네? 왜요?"

"운학아...."



너 내가 커플 유튜브 끊으라고 했지. 운학이 비죽 입술을 내밀었다. 커플 유튜브 많이 봐서 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좋은 것 같아서 그래요! 저희 제일 예쁠 때가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기록되는 거잖아요. 낭만파 김운학의 청산유수가 보기 좋게 이어졌다. 클래식 네버 다이, 오래 간 낭만주의를 양립 구도로 대응해 오던 현실주의가 꺾이지 않는 기세로 운학과 맞섰다. 두어 번쯤의 심호흡을 거듭한 여름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운학아, 너 나중에 졸업하면 음악 할 거지? 넵. 음악 해서 유명해지는 게 꿈이랬지? 그럼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넵.

그리고 누나는 나중에 취업해야 되겠지?

그렇죠.

그럼 너랑 내가 벌써부터 얼굴 팔리면 나중에 일을 어떻게 할까?

논리 싸움에서 아작 나 버린 자는 말이 없다. 지긋 인중을 늘린 운학이 얇은 입술을 말아 다물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운학의 머리 위로 여름이 손을 얹었다. 커다란 강아지를 훈육하는 듯 머리칼이 난 결대로 살살 쓸어 내리는 여름의 손길이 느릿했다. 누나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예뻐~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너무 단호했나.... 어쩐지 이맛가가 간지러운 기분에 여름이 삐질 흐른 식은 땀을 문질러 닦아 냈다. 암만 좋아하는 사람의 간청한 부탁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첨단 기술이 날로 발달해 가는 세상에서 내향인의 개인 정보는 절대 금기의 영역이다. 헛된 망각에 사로잡혀 냉큼 얼굴 팔았다가 일평생의 흑역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뭐, 음악 하고 싶어 하는 애한테 그다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나?

하는 생각도 잠시, 안으로 말았던 입술을 댓 발 내민 운학이 비좁은 원룸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눕기를 시전했다. 너 뭐 하냐?



"내가 카메라도 사고, 편집 프로그램까지 월정액으로 결제했는데!"



누나는 그냥 나랑 영상만 찍어 주면 되는데, 흐엉엉. 왜 그렇게 싫어해요. 누나는 내가 부끄러운가 봐악. 대 자로 뻗어서 두 짝의 팔과 다리를 이용해 털기춤을 선보이는 운학의 모습은 한치 오점 없는 레트로의 극치였다. 80년대 브라운관 티브이에서 무릇 소녀들을 열광토록 한 현진영의 잔상이 스친다. 미친놈....

연애 기간 내리 여름의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 않고 오케이 사인을 때리던 예스맨 운학의 양상이 익숙해질 무렵 여름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했다. 이 새끼 원하는 바가 있으면 무조건 제 몫으로 만들어야 했다. 개꼴통인 성적을 실기로 땜빵 쳐 인서울 대학 실용음악학과에 실기 우수자 전형으로 입학한 악바리 중 악바리, 그런 김운학이 여자 친구에게 커플 유튜브 해 달라며 땡깡 피우는 것? 일도 아니지. 운학은 오늘 기필코 여름과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야만 했다. 채널명도 생각해 왔단 말이야!



"일어나라."

"싫은데요."

"안 일어나면 뽀뽀 안 해 줌."

"안 받으면 그만."



너 진짜 죽을래?

넵, 방금 말은 저도 좀 무리수였어요. 취소할게요.

대 자로 뻗어 있던 마룻바닥에 냉큼 엉덩이를 붙인 운학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이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여름의 어깨를 조심스레 붙든 운학이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진짜 안 돼요......?"



특명, 연하 남자 친구 부탁이면 사족 못쓰는 여름 누나 동정심 유발하기. 기다란 눈을 동그랗게 모아 투명한 동공을 떠 보인 운학이 꿈뻑꿈뻑 여름을 응시했다. 그렇게 보지 마....



"나 진짜 소원인데...."

"안 돼."

"누나랑 커플 유튜브 하는 게 누나랑 사귀기 전부터 소원이었는데...."



구라 까지 마....

남자 친구한테 구라 까지 마가 뭐예요? 쪽, 가볍게 여름의 입술을 틀어막은 운학이 여름의 허리께를 뭉근하게 주물렀다. 흐즈 믈르그 했드. 누나아, 이래도 안 돼요? 진짜? 뼈대 굵은 손가락이 일순간 오므려진다. 천천히 허릿가를 간지럽히는 운학에 자지러진 여름이 오 분 남짓 뻐팅기다 바닥을 내려치며 GG를 선언했다. 할게, 할게! 알았어! 한다고!



"진짜요?"



어 ;



"진짜 한다고 했다? 진짜죠? 무르기 없음."



앗싸~! 운학이 삽시간 내 몸을 일으켰다. 직전 여름이 강탈해 갔던 캠코더를 되찾아 와서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전원을 켰다. 원룸까지 모셔 온 삼각대를 세팅하고는 여즉 진이 빠진 채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여름을 바로 세워 캠코더 렌즈를 가리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각대가 들어 있던 쇼핑백을 꼼지락대던 운학이 꼬깃하게 구겨진 A4 용지 한 장을 건네며 브리핑에 들어갔다.



"이게 제가 써 온 대본이에요."

"데이트를 그렇게 준비해 봐."

"아잇, 이왕 하기로 한 거 기분 좋게 해요."



제가 운학입니다~ 하면 누나가 여름입니다~ 하는 거예요.

검은 줄로 찍찍 그어진 구간에서 운학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숙사에서 혼자 머리 싸매고 이거 구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간단한 자기소개 멘트부터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얼마나 예쁘게 사귀고 있는지. 지난하면서도 예사스러운 그간의 연애담을 소소하게 풀어 놓은 운학의 글씨가 A4 용지 위에 반듯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뒤로 갈수록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필체는 못 본 척해 주는 게 연상의 미덕이겠지....

장단이나 한번 맞춰 줄까 싶어 시작했던 소개 영상은 어쩐지 계속해 더뎌진다. 계속해 NG를 외치며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조차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운학에 여름이 결국 버럭 핏대를 세웠다. 아, 어쩌라는 거야!



"누나 지금 너무 부자연스럽잖아요."



그럼 카메라가 있는데 당연히 부자연스럽지.... 여름이 억울한 듯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 브이로그 찍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그때도하나도안자연스러웠어이색햐;;나는유명한카메라공포증이라고;; 여름이 질끈 눈가를 찌푸렸다. 그리고 이런 영상은 대개 구독자가 어느 정도 누적된 상태에서 Q&A로 찍어 올리는 게 이상적이지 않은가.... 운학이 즐겨 보던 만큼 커플 유튜브의 채널 구조에 대해 통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미디어 중독자로서 유튜브의 위계를 파악하고 있던 여름은 채널 운영에 대한 나름의 일념이 있었다.



그래서 운학 역시 여름을 따라 사이좋게 한풀 꺾여 주기로 했다. 변경한 루트는 여름의 자취방에서의 일상, 생산가 없는 말다툼을 주고받고, 예사 20대 커플들의 로망인 집밥을 해 먹고, 같은 침대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뒹굴뒹굴. 저화질 캠코더에 담긴 여름과 운학의 모습은 이제야 어느덧 초보 커플 유튜버다운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이게 소개 영상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누가 첫 영상부터 물어보지도 않은 큐앤에이를 올려....

줄곧 티격태격 유치한 농담만 주고받던 운학과 여름이 비로소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백팩에서 작업용 맥북을 꺼낸 운학이 프로그램 편집창에 원본 영상을 불러오자 한 시간 남짓 되는 타임라인의 막대한 프레임이 운학과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학아, 누나 영상 편집에는 젬병인데...... 이거 분명히 니가 한다고 한 거다? 운학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름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제부터는 저만 믿으세요.

온통 외계어뿐인 전문 용어에 프리미어 기본 교재를 뒤적이던 운학은 삼십 분쯤 흘러서일까 잠에 빠진 여름에게 SOS를 쳤다. 누나, 제가 혼자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어려워서 안 되겠어요.... 그럼 그렇지, 일평생 작곡 프로그램으로 비트만 찍던 운학에게 어도비 프리미어란 신세계의 영역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운학이 내민 서적의 페이지를 이곳저곳 훑어 보며 운학의 지시하에 책장을 넘기던 여름이 운학의 어깨 위로 푹 고개를 떨궜다. 졸린가 보다....

잠든 여름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을 옮겨 쥔 운학이 살금살금 마우스를 옮겼다. 내일 누나 일어나면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벌개진 눈가로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영상 편집에 골머리를 싸맨 사이, 어느덧 허리가 꺾인 밤이 푸른 동을 틔웠다.











야, 여름아~ 유튜브 잘 봤다~

여름아~ 너 완전 연예인이더라! 막 이래! ㅋㅋㅋ

하지 마아아아악.... 컵라면 냄새로 즐비한 과방에서 여름이 두 손으로 붉어진 낯을 가렸다. 아학학, 배를 잡고 웃어 젖히는 동기들의 목소리에 여름이 빠득 이를 갈았다. 내가 이래서 유튜브 하기 싫다고 한 건데, 김운학 이 미친.......

꼭두새벽에 편집을 마친 운학은 채널을 개설하기 전 형식적인 예습을 끝마쳐 둔 모양이었다. 그림판으로 꼼지락대며 창조한 듯한 후진 그래픽의 채널 로고를 유튜브 프로필로 업로드한 운학은 빅데이터 기반 인스타그램 가입자들의 SNS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간대에 대뜸 여름과 촬영한 자취방 브이로그 영상을 업로드했다. 야무지게 스토리 공유 후에 여름의 아이디까지 태그한 운학이 뿌듯한 듯 웃음지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이 오차 없이 들어맞는 순간, 여름은 침 뱉기 대신 피골이 상접한 운학의 안색에 그래그래잘했어.... 나데나데 훈육법을 채택하셨다.

반면 안 그래도 넓은 김운학 등 한껏 기세등등해지셨다. 멀찍이서 지켜보면 체교과 덩치들 버금가는 등짝에 운학의 동기들은 혀를 내둘렀다. 한 시간짜리 영상에 자막과 그래픽을 입혀 이십 분 삼십삼 초의 타임라인으로 합축한 운학은 피를 토하면서도 강의실로 등교해 새로 개설한 채널의 홍보를 멈추지 않았다. 얘들아, 영상은 다 안 봐 줘도 되니까 인스타에 공유도 좀 해 주고, 좋아요랑 구독도 눌러 줘.... 나 우리 누나한테 엄청 떵떵거렸단 말이야....

막역한 우정을 도모해도 또래 대학생들이란 죄 거기서 거기다. 오로지 자극만 향유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씹을 거리만 찾아 헤매는 족속들, 그들에게 운학의 채널은 딱 그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였지만 한 톨의 관심조차 소중히 붙잡아 둬야 했던 초보 유튜버에겐 구걸을 감행해서라도 좋아요 한 개를 받아 내야 했다. 책임조차 지지 않을 일에 가볍게 입을 놀리던 운학의 동기들은 손뼉을 치며 운학의 사기를 충전했다. 야, 너 내가 유튜브에 소질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여름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다. 근데 봐 줄 만하던데? 편집은 누가 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밤을 새워 마우스질에 열을 올리던 운학의 얼굴은 대단한 노력이 잠재되어 있었던 터......

이러다 진짜 대박 치는 거 아니야? 운학과 여름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우리 수익은 그냥 5:5 할까? 아니요오, 누나가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해 줬으니까 누나가 조금 더 가져가요. 아니야아, 편집이랑 촬영이랑 다 니가 했잖아. 나중에 운학이가 써 왔던 대본으로 진짜 큐앤에이 영상도 올리자, 흐흥. 우리 아들딸 학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겠지.... 본가에서 두 남녀 염려 중인 부모님들이 알게 된다면 기절할 노릇이었다.

운학과 여름은 하루가 멀게 유튜브 스튜디오 애플리케이션을 붙들고 신규 조회 수 누적도와 유입 키워드 및 해시태그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렇게 하기 싫다며 치를 떨어 놓고는 오히려 운학보다도 다급한 기운을 드러내며 우리 영상 알고리즘 안 타나? 우리 영상 왜 이렇게 조회 수가 안 모이지? 하는 여름에 운학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는 하기 싫다면서요.... 야, 잘하면 대박 칠 수도 있는데 당연히 사람이 이렇게 되지! 도리어 운학이 여름의 등을 다독이며 마음먹은 바는 뭐든 천천히 기다려야 이루어진답시고 타일러댔다. 커플 유튜브 안 해 주겠다는 말에 바닥에 드러누워 브레이크댄스를 시전한 과거는 새까맣게 잊어먹은 듯한 모양이었다....

이후 잔뜩 유튜버 뽕이 주입된 여름과 운학은 자취방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든, 실외로 나가 생산적인 데이트 플랜을 이행하든 늘상 캠코더와 동반했다. 카메라를 등진 채 어색한 표정만을 고수하던 여름은 이름난 유튜버가 되기도 전 완연한 셀러브리티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이거는용~ 무슨 케이크인데용~ 인스타에서 엄청 유명해요~ 캠코더를 감싸 쥔 운학이 덩달아 신나 맞장구를 쳤다. 맞아용, 여름이 누나가 열심히 서치해서 찾은 감성 카페랍니다~ 채널을 개설하기 전까지만 해도 놀고 있다며 혀끝이나 차댔을 여름이었지만 막상 발 들이면 누구보다 진심이 되는 것은 여름의 오랜 습관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서도 운학과 여름이 꾸준히 업로드한 세 개의 영상은 끝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실망감이 잔뜩 어린 여름의 얼굴에 운학은 머쓱하게 여름의 뺨따구니를 주욱 늘리며 우리끼리라도 재미있었으니까 됐죠, 너스레를 떨었다. 몇 주 내리 운학과 여름이 달달 볶던 캠코더는 다시금 운학의 기숙사 책장에 처박혀 버린 지 오래, 한 시간에 한 번씩 커플 유튜브 채널을 확인해 조회 수와 댓글 반응을 확인하던 여름 역시 장안의 화제였던 운학과의 채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현생 집중 모드에 돌입했다.

기말 고사가 끝나고 난 뒤 여름의 자취방 침대 위에서 한껏 뒹굴대고 있던 운학이 누나, 하고 여름의 어깨를 톡 두들겼다. 왜? 저 이런 거 찾았어요. 운학의 갤러리 한 바닥을 가득 채운 지지난 달의 잔해다. 커플 유튜브 채널 로고의 여러 가지 초안, 여름이 생긋 웃으며 반문했다. 이거 그때 그냥 계속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죠.... 이제 더 이상 운학의 릴스 알고리즘이나 유튜브 추천 탭에도 커플 유튜버들의 인스턴트식 숏츠 영상은 얼굴을 디밀지 않는다. 한때는 숏츠 제작을 해야 돈이 되나 싶어 MZ 미디어 강습 클래스라도 등록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빛이 바래진 우스운 기대들에 여름이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 그래도 우리가 찍어 올린 영상 한번 봐 볼까요? 심심한데.

오글거리게 뭐 하러 봐.... 여름의 만류에도 한껏 들떠 아이패드 전체 화면 모드를 터치한 운학이 여름의 허리를 감쌌다. 480p 캠코더 화면 속에서 웃고 떠드는 운학과 여름의 모습들이 픽셀화되어 태블릿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실수로 카메라를 떨군 운학에 야 이 바보야! 타박하는 여름의 목소리가 흐릿한 화면과는 대비되도록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누나는 이때도 화내고 있네요. 개구지게 미소짓는 운학에 여름이 넌지시 고개를 기댔다.

진짜 진짜 싫었는데....

그냥 이런 모습들이 하나하나 기록되어서 우리 둘 연애담에 소소한 에피소드로 매김하는 거라면, 나름 괜찮을지도? 얼굴을 부비적대는 여름의 이마에 운학이 짧게 입맞췄다.

한편 변방의 유튜브 코리아 사용자가 추천 탭에 불쑥 떠오른 개꾸진 디자인의 썸네일에 짐짓 눈썹을 꿈틀댄다. 썸머썸머? 남자 잘생겼는데, 이 채널 뭐지....



 
©︎ 메로코 님